[Essay]공간에도 표정이 있다

2021-12-14

공간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공간에 무슨 표정이 있어?'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웃는 듯 마는 듯 약간의 미소도 그 표정을 마주하자면 그 곳이 어디든 절로 기분이 좋아지듯, 안에서 비치는 빛이나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의 표정이 있습니다. 마치 빵집 냄새에 저절로 이끌려 가듯, 조금 흐린 하늘 아래 강남의 바쁘고 거친 아스팔트를 보다가 만난 전구색 노란빛에 이끌려 다다른 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주문해보려 합니다.

"라떼 한 잔 주세요" 

입구가 좁은 구조의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 좁은 주방 공간에서도 여러 건의 주문을 처리하고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서, 주문을 받으려 응대하는 한 점원에게 메뉴를 잠시 살펴보다가 원하는 걸 이야기합니다. 

"적립하시나요?" 

요즘 적립은 대체로 이렇게 합니다. 하나 두 개 도장을 모으던 재미가 있던 명함처럼 생긴 적립카드는 요즘 잘 쓰지 않는 듯 합니다. 스마트폰 어플이 설치되어있지 않아 어차피 쓰지 않을 것 같아 하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주문 끝. 카드를 꺼내 스마트카드리더기에 꽂고 결제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직원의 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여 그제야 귀에 꽂아뒀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며 '네?'라고 되묻습니다.


"따.뜻.한.라.떼. 맞으세요?!"


마치 청력이 약해 계속 되묻는 할아버지께 그러듯,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하는 질문에 '네'라고 짧게 대답하며, 앞선 대화가 나만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깨닫습니다. 주위가 시끄러운 데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 바깥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탓이었습니다. 주문할 때 분명 의사 전달을 했고, 늘 하던 대로 결제를 하려 했는데 사실은 메뉴 주문을 한번 더 확인하려 한 점원을 오해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당장은 오해를 했다는, 혹은 기분 좋은 어떤 흐름에 아주 잠깐의 간섭이 발생했다는 사실보다 아쉬웠던 것은 그 점원의 표정과 말투였습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짜증 섞인 목소리로, 톤을 높여 또박또박 읊은 '따뜻한라떼' 다섯 글자는, 바삐 움직이는 다른 점원들, 마침 같은 카페를 출근길에 방문한 동료와의 조우,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와 그것과 섞여 음향의 매력은 오래전부터 닳아 없어져 버린 음악소리 등, 아침 출근 여행의 끝에 만난 완벽했던 나만의 기분 좋은 휴식처에 조금 불편한 여운이 메아리치게 하는 하는 외침이었습니다. 

물론, 잘 못 듣고 원활하게 결제하지 못한 방문자의 탓이 크지만, 참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 하나가 그 공간 전체의 표정을 찡그리게 만든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어쩌면 공간은 그대로인데, 그걸 어떤 분위기로 만드는 건 그 안에서 사방(四方)을 오감으로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조금 어수선하고 답답한 엘리베이터지만, 반가운 얼굴의 동료를 만나 여담을 나누는 시간으로 인해 잠깐이지만 낯설었던 이 동네의 따뜻한 누군가의 곁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작은 그랬지만, 그 공간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다시 하루의 다른 장(phase)이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웃고 우는 표정의 경계에서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생긴 작은 파장이 변화시킨 공간의 분위기는, 오직 나만의 세계에서만 벌어진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그 점원도, 그저 기억 못 할 하루 수십 명의 방문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일으킨 잠깐의 불협화음이 좋은 하루라는 연주를 완성하기에 아무런 영향도 없었기를 바라봅니다. 

웃음 짓는 얼굴과 손길로 건네받는 커피 한 잔은 그로부터 커피 이상의 '선물'처럼 느껴질 테죠. 마치 웃음 번지는 기분 좋은 공간처럼.



"이거 마시고 기분 풀어"
(손출연: 클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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